발뮤다 폰에서 생각해보는, 요즘 스마트폰들의 특이한 세계

2021. 11. 18. 18:56모바일

*뻘글 작성자 : 루릭 (blog.naver.com/luric)

테크 뉴스에 관심 있는 분들, 그리고 발뮤다의 가전 제품을 만족하며 사용하는 분들 모두가 이 괴상한 물체의 등장을 목격했을 것이다. 사실상 시대에 뒤처진 컨셉과 디자인이라서... 누구나 쉽게 무시하거나 비판할 수 있는 제품이라고 본다. (언락폰 가격도 100만원이 넘으니 이미 실패했다고 봐도 무방할 듯) 하지만 이런 제품에서 교훈을 얻고 다른 아이디어를 검토하는 자세도 중요할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발뮤다의 스마트폰 기획팀에게 애도를 표하는 대신 발뮤다 폰(Balmuda Phone, tech.balmuda.com/jp/phone/)의 등장으로 인해 알 수 있는 '요즘 스마트폰들의 특이성'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스마트폰 분야는 너무나 변태적이라서 디자이너들의 자연 및 인간 친화적인 생각이 통하지 않는다.

 

먼저 발뮤다 폰의 하드웨어 디자인부터 살펴보자. 제품 상세 페이지에서는 다음과 같은 주제를 제시한다.

1) 자연스러운 크기
: 충분한 정보를 보여주는 디스플레이 면적을 지니면서 휴대하기 쉬운 크기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4.9인치를 선택했다.

2) 곡선으로만 설계
: 인간의 손은 평평한 판에 맞지 않으므로, 손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지기 위해서 케이스를 곡선으로만 구성했다.

3) 예술성
: 폰의 곡선형 케이스에 전자 부품을 담기는 무척 어려웠으나 예술적으로 담아냈다. (...)

 

2021년 후반 스마트폰의 하드웨어 소개 페이지에서 본인이 중고등학생 시절 미술 시간에 들었던 이야기가 나올 줄은 몰랐다. '자연에는 직선이 1도 없으니 그림 그릴 때 항상 생각해두라'는 이야기다. 이미 10년 넘게 스마트폰을 사용 중인 우리는 발뮤다 폰의 둥근 후면을 보면서 '아오... 저거 책상 위에 놓고 쓰면 흔들려서 어쩌냐...'라고 불평부터 할 것이다. 발뮤다 폰의 디자인 팀은 스마트폰이 언제나 유저의 손바닥 안에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스마트폰을 책상 위에 둔다면 화면이 안 보이도록 뒤집어둔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스마트폰의 크기는 곧 화면의 크기로 결정되는 것이니, 4.9인치를 선택한 점은 이후 더 큰 화면의 모델로 확장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만약 이 폰 하나만 팔겠다면 발뮤다 폰은 가장 적은 수의 유저 그룹을 타겟으로 둔 셈이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에서 수많은 컨텐츠를 들여다보고 있으며 더 넓은 창을 통해서 더 많은 것을 보고 싶어한다. 특히 비디오 스트리밍과 모바일 게임에 빠진 유저에게는 큰 화면이 필수 조건이다. 작은 스마트폰을 원하는 사람들은 컨텐츠를 다른 수단(데스크탑 또는 노트북 PC, TV, 태블릿 등)으로 감상하며 스마트폰의 사용 빈도가 낮은 쪽이다. 또는 본인처럼 스마트폰을 두 개 이상 보유하면서 연락 용도의 작은 메인폰과 컨텐츠 감상용의 커다란 서브폰으로 두는 경우가 포함된다.

 

본인이 생각할 때, 요즘 나오는 스마트폰들이 모두 네모 반듯한 슬레이트 형태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스마트폰의 개념은 휴대용 PC가 아니라 디스플레이 가전에 가깝다.
: 스마트폰의 컴퓨터 파트는 기술의 발전으로 매우 작게 줄어들었다. 이제는 사람들이 더 오랫동안 더 편하게 컨텐츠를 볼 수 있도록 디스플레이 면적과 배터리 용량을 늘리는 중이다. 스마트폰의 강력한 컴퓨팅 성능은 기본 사항이 되었으며, 사람들은 '휴대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로써 스마트폰을 생각하게 됐다.

2) 스마트폰은 내부의 기본 장치이고, 유저의 개성과 취향은 외부의 케이스 액세서리로 표출된다.
: 애플 아이폰의 예쁜 외형과 색상을 보면서 '이걸 케이스로 덮어버리면 무슨 소용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디스플레이 가전처럼 정착되면서 사람들은 케이스 액세서리와 스마트폰의 조합을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다. 스마트폰 자체는 기능으로 동작하는 내부 장치이며, 그 외부에 원하는 형태와 디자인의 케이스 액세서리를 덧씌워서 자신의 성향에 맞춘다. 물론, 내부 장치부터 디자인과 색상이 아름답다면 만족감이 더 커질 것이다. 케이스 액세서리를 벗겼을 때 스마트폰이 그저 시커먼 평판이라면 심리적으로 불만이 생기는 것이다. 소중하고 멋진 디스플레이 가전 제품에 자신의 스타일을 입혀서 휴대하는 것이 스마트폰과 스마트폰 케이스 액세서리의 상생 관계다. 그리고 케이스 액세서리 없이 스마트폰만 쓰는 '생폰 유저'는 스마트폰 자체의 디자인에 예를 표함으로써 자신의 개성을 표출한다.

3) 스마트폰은 여러 종류의 위치와 맥락에 끼워지는 카드와도 같다.
: 스마트폰은 중요한 커뮤니케이터 역할을 하므로 항상 유저의 곁에 있게 된다. 그러나 무선 이어폰, 스마트워치 등의 액세서리가 생기면서 스마트폰 본체가 여러 위치와 맥락에 놓이는 경우도 많아졌다. 집에서, 자동차 안에서, 상점 계산대에서, 스마트폰은 하나의 아이덴터티 카드처럼 사용된다. 여기저기 끼워지고 놓이며 다른 기기와 접촉해야 한다. 네모 반듯한 슬레이트 디자인이 어쩌면 당연한 이유다.

 

발뮤다 폰의 '전용 애플리케이션' 정책도 '스마트폰을 덜 쓰는 사람'에게 초점이 맞춰진다. 어쩌면 일본 내부 시장의 경향일 수도 있겠다. 원터치로 시작하는 음성 통화와 문자, 최대한 간결하고 쓰기 편하게 만들어진 캘린더와 계산기, 타이머, 그리고 요리 사진을 더 먹음직스럽게 만드는 카메라 모드... 이러한 기본 앱만 있어도 이 폰의 사용 목적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는 30대 또는 40대 이상의 유저 연령에서는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여기에서도 몇 가지 생각을 해볼 수 있다.

1) 현재의 젊은 유저들은 스마트폰의 활용도를 넓히는 앱의 탐색과 설치에 적극적이다. 그리고 이들이 미래의 스마트폰 분야에서 앱의 다분화를 이끌게 된다. 스마트폰에 설치된 앱이 하나 늘어날 때마다 삶에서 하게 될 활동이 하나씩 늘어나는 셈이지만, 많은 수의 젊은 유저들은 이를 귀찮아 하지 않는다. 또한, 스마트폰 회사가 지정해둔 기본 앱의 영향이 클수록 유저의 자유가 제한되는 면도 있다.

2) 가장 많이 쓰이는 앱 몇 개를 최적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 스마트폰에서 새로운 개념의 기본 앱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러한 부분은 스마트폰의 OS에 포함되어서 유저의 전반적 사용 경험을 향상시킬 수 있다. 색다른 디자인과 유용하고 쾌적한 앱 사용을 제공하는 OS 업데이트는 사람들에게 공짜로 새 스마트폰을 받는 듯한 기분을 준다. 또는 새 스마트폰으로 변경해야 할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또 다른 스티브 잡스가 나와서 뭔가 큰 뒤엎기를 하지 않는 한 스마트폰들은 계속 판때기 모양으로 남을 듯하다. 접거나 둘둘 말아도 펼치면 네모꼴 평판의 디스플레이다. 손에 자연스럽게 잡히기 위해서 곡선이 될 필요도 없고, 반드시 바지 주머니에 들어가야 한다는 이유로 크기가 작아질 이유도 없다.

사실,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퍼스널 컴퓨터의 형태를 생각해보면 스마트폰이 계속 스마트폰 모양인 이유도 알 수 있다. 스마트폰도 퍼스널 컴퓨터이며 퍼스널 컴퓨터와 매우 유사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글은 왜 쓴 거냐!!) ■